김씨의 성性 거짓과 진실
결국 김씨는 진흥왕 이후 신라계, 가야계 동일하게 ‘김씨’라는 성을 썼다가
통일신라 후기에 들어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가야계 김씨가 독자적인 뿌리를 찾으며 분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 신라계 김씨 안에서도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면서 경순왕을 뿌리로 하는 김씨와
그렇지 않은 김씨로 분화했으며,
경순왕 계에서도 고려초기 분봉에 따라 분화가 가속화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김씨의 분화와 역사에서 의문시 되는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한 본관으로 400만명이 넘는 대본관을 형성할 수 있는가이다.
현재 김해 김씨는 총인구가 98파에 412만5000명(2000년 인구센서스)이 넘는 대본관을 형성하고 있는데,
과연 김유신 이후 1300여년 동안 그 많은 후손을 배출할 수 있는 가이다
(사실 과학적으론 불가능하다).
둘째, 경순왕의 후손들은 총 179개의 본관으로 분화되었다.
여기에 다른 성씨로 분화된 곡산연씨, 수성최씨까지 더하면 181개 본관이다.
현재 이들 본관 인구를 합하면 김해 김씨의 412만 5000명과 비슷하다.
1000년 동안, 한 사람의 후손이 181개 본관으로 분화된 것도,
또 400만명 가까운 후손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과학(생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셋째,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를 자처하는 대다수의 본관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개관(開貫)한 본관들이다.
앞서 성씨와 족보 편에서 이야기 했듯이 족보가 만들어진 것은 조선 중기 이후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개관을 하면서 어떻게 대보공 김알지의 후예(후손)임을 증명하고 표명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의 대표 성씨인 김씨의 역사에서 보듯이
그 진실은 역사적 과정을 거쳐 윤색되고, 채색되고, 각색 되어온 것이다.
또한 창작되고, 개작되고, 첨작되어 그 진실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게 되었다.
그중에는 진실도 있을 것이며, 거짓도 있을 것이다.
글 / 다문화센터 사무총장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에서 발췌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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