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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경순왕의 일생

시인김남식 2007. 9. 18. 22:18

 

경순왕(敬順王)의 일생

 

신라 제56대왕. 재위 927∼935. 본관은 경주(慶州). 
경순왕 (? - 979)은 신라 56대 왕으로 927년 후백제 견훤의 침공으로 경애왕이 승하하자

견훤에 의해서 왕위로 즉위하니 이름은 부(傅)로 문성왕(839~857)의 6대손이고 아버지는 이찬(伊飡)

효종(孝宗)이며 어머니는 헌강왕(875~886)의 따님 계아태후이고 비는 죽방부인 박씨와

왕건의 딸인 낙랑궁주 왕씨이다. 
당시 신라는 가뜩이나 국력이 쇠약한데다 경애왕은 비빈 및 종친과 더불어 포석정에서 놀고 있을 때

견휜이 침입하여 왕을 죽이고 왕비를 겁탈했다

경순왕이 왕위에 올라 경애왕의 시신을 모시고 신하들과 함께 통곡한 후 시호를 경애라 하고 

남산 해목령(蟹目嶺)에 장사를 지냈다.

 

경순왕 3년(서기 929년) 7월에 견훤이 의성부성(지금의 의성)을 공격하자 고려 장군 홍술이 맞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고 전사하였다. 순주 장군 원봉이 견훤에게 항복하였다.

경순왕 4년(서기 930년) 태조가 고창군(古昌郡) 병산(甁山)에서 견훤(甄萱)과 싸워 크게 이기고 견훤군을 참살하였다.

다음해 2월에 고려 태조는 50여 병사를 이끌고 도성 가까이 와서 신라 왕을 만나자고 하였다.

왕은 신하들과 함께 교외로 나가서 맞이하고, 궁으로 모시고 와서 큰 잔치를 베풀며 술을 권하였다.

잔치가 무러익어 가자, 왕은 "나는 하늘의 도움을 입지 못하여 환난이 끊이지 않고, 견훤이 옳지 못한 일을 자행하며

우리 나라를 쳐서 빼앗으니 얼마나 통분할 일인지 모르겠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울었다. 태조 역시 눈물을 흘리며 왕을 위로하고 수십일 동안 머물다가 돌아갔다.

경순왕의 정책과 신라의 민심은 난폭한 견훤 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이미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

경순왕 9년(서기 935년) 10월, 왕은 사방의 강토가 모조리 남의 땅으로 빼앗기고 나라의 힘이 약하여

스스로 지킬 수 없슴을 알고, 신하들과 항복 할 것을 의논하였다.

신하들은 각기 옳다거니 그르다거니 의논이 분분하였다. 이 때 왕자(마의 태자)가 말하기를,

 "나라가 존재하거나 망하는 것은 반드시 하늘이 정하는 것이오. 그러니 마땅히 충신과 의로운 사람들을

모아 민심을 수습하고, 우리 힘으로 나라를 굳게 지키다가 힘이 다한 후이면 모르거니와,

어찌 천 년을 지켜온 국가를 하루 아침에 남에게 내줄 수가 있으리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외롭고 위태함이 이와 같으니 우리의 힘으로는 온전히 지킬 수가 없다. 이제 와서

더 강해질 수도 없고 더 약해질 수도 없을 만큼 약하게 되었으니,

죄 없는 백성들을 참혹하게 죽게 하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 하고 경순왕은 935년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처의 군웅 할거로 국가 기능이 마비되자 김봉휴로 하여금 고려 태조에게 항복하는 국서를 전하여

재위 8년의 신라 마지막 왕이 되었다

 

왕자는 울며 하직하고, 곧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가 바위 옆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그 곳에서 왕자는 베옷 차림에 풀뿌리, 나무 열매를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

11월, 고려 태조는 국서를 받아 보고, 대상 벼슬의 왕철 등을 신라까지 보내어 경순왕을 맞게 하였다.

마침내 경순왕은 백관을 거느리고 서라벌을 떠나 송도로 향하는데, 행렬이 30리에 뻗쳤다.

고려 태조 왕건이 송도 교외에 나와 경순왕을 맞아 위로하니, 이로써 신라는 나라를 세운 후 922년 만에 멸망하게 되었다.

경순왕은 고려 태조에게 항복한 후 태조로 부터 유화궁(柳花宮)을 하사 받았으며, 낙랑공주(樂浪公主)를

아내로 맞고 정승공(政承公)에 봉해졌으며, 경주(慶州)를 식읍(食邑)으로 받았으며 

다른 망국의 왕들과는 달리 그는 편안하고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살다 죽었다. 

 

경순왕이야 말로 민족 통일이란 대의를 위해 자신의 나라를 과감하게 전쟁으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퇴위의 미덕으로 도탄에 빠진 신라 민중의 생명을 보전한 왕으로서 신라 천년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신 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신라 왕릉으로는 경주를 벗어나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왕릉이다.

백성들을 위해 천년 사직을 고려 왕건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경순왕 능은 

경기 연천군 장남면(長南面) 고랑포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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