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아품 비무장지대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 직후 미국과 소련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목적으로 한반도에 진주하여 38도선을 기준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45년 8월 12일, 미국은 한반도의 38선을 기준으로 미국, 소련이 공동 진주할 것을 채택하였다. 해방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 한반도 전체를 점령하려 했던 소련의 스탈린이 미국의 38선 분할에 동의함으로써 한반도 분할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때의 38선은 지금의 남북분단선은 아니었지만 이를 시작으로 하여 남북한의 장기적인 분단은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 3년간 미국 군정과 소련군정기를 거쳐 남북한이 각기 다른 정부를 수립함에 따라 분단은 고착화되었다. 더욱이 1950년 북한의 무력 도발로 시작된 3년간의 동족상잔의 결과로써 38선은 지금의 군사분계선인 휴전선으로 바뀌었고 비무장지대가 설정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비무장지대는 민간인 350만여 명과 군인 150만여 명의 인명, 1천만 이산가족, 수십만 전쟁 고아와 미망인을 만든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 중의 하나인 한국전쟁의 산물이다.
휴전선은 1953년 7월 휴전 당시 판문점에서 열린 회담에서 UN군 최고 사령관, 북한 인민군 사령관,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이 합의하여 설정되었다. 이 휴전협정 제1조 1항에서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km씩 후퇴함으로써 적대 군대간에 한 개의 비무장 지대를 성정한다"고 하였다. 즉, 적대관계에 있는 두 지역의 경계 지역이자 비무장을 선언한 완충 지역이 비무장지대 "DMZ : Demilitarized Zone"이다. 따라서 비무장지대 안에서는 민간인은 물론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일절 금지되어 있다.
휴전선은 바로 한반도 중부 지역을 동서로 248km를 연결하는 군사 분계선이며, 비무장지대는 이 군사 분계선을 기준으로 하여 4km의 폭을 지닌 약 907km²(2억 7천만평)의 지역을 말한다. 이 면적은 전체 한반도 면적 22만 km²의 약 1/250의 면적에 해당된다. 그런데 동서 248km가운데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2km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현재 거의 없을 정도로 남북의 대치 간격이 좁아져 있는 실정이다.
이와 유사하게 민간의 출입이 제한되며 군사적인 목적에서 설정된 지역이 '민간인통제선 : Civilian Control Line : 民統線'이다. 민간인통제선은 비무장지대의 남방한계선으로부터 각각 5~20km 인 곳에 설정된 것으로, 이 지역 역시 군사시설 보호와 보안유지를 위해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왔다. 이 지역은 휴전선의 경계지역이자 민간생활 통제지역이며 민간인 통제 효과로 나타난 생태적 보전지역이기도 하다. 따라서 넓은 의미의 비무장지대란 민간인 출입과 개발이 억제되고 보전이 강한 지역, 곧 비무장지대 자체(폭 4km)와 남북한 접경지역(민통지역 5~20km X 2)을 포함한 총 30~40km의 완충지역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국제법상으로 비무장지대는 비군사화된 완충지대, 중립화지대를 말하는 것으로 따서 이 지역에서는 소소의 제한된 병력만이 개인화기를 가지고 상대를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더욱이 비무장지대에서는 적대 행위 금지에 관한 특별 규정을 두고 있다. 정전협정 제1조 6항에서 "쌍방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또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또는 비무장지대에 향하여 어떠한 적대 행위도 감행하지 못한다."고 하여, 비무장지대 안팎에서 일체의 적대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적대적 행위의 방지를 위하여 군인과 민간인을 불문하고 비무장지대의 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남북 양측이 비무장한다는 휴전협정상의 약속을 위반하고 비무방이 아닌 '중무장지대 : Heavily Militarized Zone : HMZ'로 만들고 말았다. 언제 발발할지 모르는 극한 대치상황 때문이겠지만 하여튼 지금은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화된 지역이 되버렸다. 남북한군, 미국군 등 100만 이상의 중무장한 전투 병력과 첨단 무기류의 배치 및 지뢰, 철책, 콘트리트 장벽 등 각종 군사적 장애물이 밀집되어 있다. 실제 소규모의 총격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남침용 땅굴이 다수 발견되는 등 무력 분쟁이 있었으며, 정전협정을 위반하였다고 하여 남북 양쪽이 군사정전위원회에 항의한 사례가 하루에도 70~80여 건에 이르렀을 정도이다.
한편, 비무장지대는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행해졌던 전장의 한복판으로서 당시 세계 각국에서 개발된 다양한 무기들이 묻혀있는 일종의 전쟁박물관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엄청나게 많은 포탄과 탄환, 계급장과 철모 및 수많은 지뢰가 매징되어 있어, 이른바 '죽음의 벨트'라고 불리기도 한다.
1998년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비무장지대의 지뢰 매설 지역이 여의도 면적의 334배에 해당하는 992km²(2억 9천 7백 60만평)에 달하며, 지뢰 제거 비용이 최대 100억달러에 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특히 탐지가 불가능한 대인 지뢰가 약 100만발이 매설되어 있는데, 이는 성인 15걸음마다 1발이 묻힌 꼴이며, 미확인 지뢰 지대도 20만여 평에 달하여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 1992년~1998년 9월까지 총 48건의 지뢰 사고가 발생하여 40명(군인 25명, 민간인 15명)의 사망자와 46명의 부상자를 낳았다. 더욱이 군사 전문가들에 의하면, 북한의 목각 지뢰와 한국의 플라스틱 지뢰는 탐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경의선 철도 복원과 병행하여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무력 대결에서 평화공존으로 그 의미가 탈바꿈하고 있다.
이처럼 비무장지대는 분리와 톨합, 파멸과 생존, 대립과 화합이라는 극단적인 대립 가치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21C 한반도 평화통일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비무장지대와 민간인통제선 북방지역(일명 민북지역)은 지리적으로 중부의 한강과 임진강이 흐르는 서해안 지역, 내륙의 한탄강과 한강 상류 지역, 태백산맥 영서, 영동 지방의 북부지역을 포함한다. 비무장지대는 한반도를 가르며 동서로 놓여져 있는데, 동부는 급사면, 서부는 완경사면을 이루고 이루는 동고서저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대체로 서부지역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한강 하구로 평야 지대를 이루고 있고 서해안 도서 주변에는 간석지와 갯벌이 발달해 있다. 반면 동부 지역은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으며 동해안을 따라 해안 지대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서부 지역은 강화, 김포 등 인구 밀집 지역으로 도시가 발달해 있으며, 동부지역은 전형적인 산간지역이 대부분이고 일부 간성, 고성 등 해안 도시가 있다.
산림청 조사 자료에 의하면, 비무장지대의 면적은 약 90,703ha(2억 7,219평)로 산림, 초지, 농경지, 습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중 산림이 약 68,797ha(76%)로 가장 넓고 농경지는 남쪽이 588ha인데 반해 북쪽은 1,907ha로 남쪽에 비해 3배나 넓으며, 농경지나 목초지 등으로 개발 가능한 초지는 남쪽이 9,091ha, 북쪽이 9,324ha로 비슷하게 분포하고 있다.
한편, 비무장지대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4km의 폭을 지닌 지역으로 설정되었으나, 남과 북이 서로 남·북방한계선을 치고 올라와 그 면적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양구군 해안면의 경우 비무장지대는 군사분게선에서 1km 줄어들었다.
비무장지대의 도로 교통망은 두절된 지 오래된 채 방치되어 있다. 철로는 전쟁 전에 뚫렸던 경의선(19.3km 단절), 경원선(31km 단절), 동해 북부선, 금강산선이 휴전선에 의해 단절되어 있다. 단절된 도로망으로는 문산 - 자유의 다리 - 판문점 - 개성으로 연결되는 국도 1호선을 비롯하여 총 5개의 국도가 있다. 현재 계획 중인 경의선 복원 및 남북 연결 도로망 구축은 앞으로 남북교류 협력 및 비무장지대 개발과 보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편, 비무장지대는 하국전쟁 다시 최대 격전지였기 때문에 이석에서 서식하던 동식물의 생존이 크게 위협받았으며, 지형마저 변모될 만큼 황폐화 되었다. 그러나 휴전 이후 50여년간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상태에 있었으므로, 동식물은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비무장지대에는 한반도에 서식하는 2,900여종 식물 가운데 1/3이, 포유 동물 70여 종 가운데 절반이, 조류 320여종 가운데 1/5이 이 지역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또한 이곳에는 금강초롱 등 국내의 대표적 고유종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최근 연구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민통선·비무장지대에는 희귀종 담수어종 및 천연기념무로 지정된 재두루미, 잿빛개구리매 등 13종의 천연기념물과 멸종 위기에 처한 덤불해오라기, 쇠제비갈매기 등 11종의 희귀종이 서식하고 있다고 하여, "생물 다양성의 표본"으로서 그 생태적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최근 금강산이 시작되는 건봉산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된 '선비먼지버섯'이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철원평야의 철새도래지, 국내 유일의 고층 습원인 용늪, 최대의 열목어 서식지인 두타연, 금강산과 설악산을 잇는 향로봉 산맥, 서해안 갯벌지역 등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귀중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비무장지대의 상당수 지역은 각종의 군사 시설물이나 군사 도로가 생태계를 무시한 채 건설되었고, 상대방 감시에 방해가 되는 나무나 그밖의 생태를 시계청소라는 이름으로 불태워 자연생태계가 파괴되고 있기도 하다.
비무장지대 및 그 접경지역(남방한계선에서 민통성에 이르는 지역)은 경기와 강원 2개도에 걸쳐 동서로 펼쳐져 있다. 북쪽은 청단, 연안, 백천, 개풍, 평강, 창도, 금강의 7개 군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쪽에는 인천시의 옹진, 강화, 경기도의ㅣ 기모, 파주, 연천, 강원도의 철원, 화천, 인제, 양구, 고성 등 10개 군 지역의 행정 관할 구역을 포함하고 있다.
민간인통제선(일명 민통선)은 원래 1954년 2월 미육군 8군 사령관이 군사적 목적으로 민간인의 귀농을 억제하기 위해 설정된 '귀농선'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1955년부터는 영농이 개별적으로 허가되어 제한적 영농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958년 6월, 군 작전 및 보안상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출입영농(민통선 북방지역에 거주하면서 민통선 내 경작지에 출입하여 영농하는 것)과 입주영농(민통선에 거주하며 영농하는 것)이 허가되고 귀농선의 이름은 '민간인통제선'으로 바뀌었다. 이후 민간인통제선이 한국군에 이양된 후에는 국토 이용의 제고, 유휴경지 활용 및 북한의 계획적인 선전촌에 대응하여 자립 안정촌(1959년부터 96개), 재건촌(1973년 12개), 통일촌(1973년 2개) 등의 형태로 입주영농이 시작되었다.
최근 점차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수 차례 민통선이 북쪽으로 재조정되어 민통선 면적은 감소하였다. 1999년 혀재 민통선 북부지역은 경기도와 강원도 9군 24읍면에 걸쳐 105개 마을이 있으며, 20,7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민간인통제선 북방지역(일명 민북지역)의 (미)입주 마을 현황은 아래의 표와 같다.
대 성 동 | 자립안정촌 | 재 건 촌 | 통 일 촌 | 미입주마을 | |
성립근거 | 휴전 협정시의 특별조치로 성립. 현재 비무장지대 내에 존재하는 유일한 부락 | 경작가능지의 민간인 양도 규정 | 전후 수복지역 대북 우위성 과시 목적의 이상촌 건설 | 대북 우위성 과시, 전선 방위, 유휴 경지 활용 목적의 전략촌 | 기존 마을 중 군사 시설 보호, 보안유지를 목적으로 입주불가조치 |
건립시기 | 기존, 재건립 | 기존 | 1968~1973 | 1973 | 기존 |
통제수준 |
출입 통제 소유불안정 경작권 인정 |
촐입 통제 소유·행사 자유 |
소유 불인정 |
소유 불인정 경작권 인정 양도 규제 |
입주 불가 출입영농 허가 |
현재 비무장지대 내에 존재하는 유일한 부락으로 대성동 '자유의 마을'이 있다. 이 '자유의 마을'은 1953년 8월 군사 정전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정전협정 이전에 비무장지대 내 거주자는 계속 입주를 허용한다"는 쌍방의 합의에 따라 30가구 160여 명의 거주가 혀용되어 군사분계선 남쪽 500m 지점에 형성되었다. 이곳 주민들은 병역과 납세 의무를 면제받는 특권을 누리고 있으나, 연중 8개월은 이곳에서 거주해야 하며, 남자는 결혼하여 배우자와 함께 살 수 있으나 외지인과 결혼하는 여자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 한편,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대응되는 북한측의 대남 선전촌으로 '평화의 마을'이 있다.
현재 민북지역은 군사시설보호법(통제보호구역) 등에 의해 출입 통제 또는 입주 및 출입 영농에 대한 통제, 소유권 통제 등의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특히 민북지역 50% 이상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각종 개발이나 형질 변경 등의 건설 사업에 제약이 많은 실정이다. 이러한 정부의 개발에 대한 통제로 말미암아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에 반사적인 효과로 수십년간 인간의 발길이 머무르지 않은 까닭에 과거 취락지나 경작지 등은 자연자원으로서의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렇듯 민북지역에서는 군 작전상의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입주영농이나 출입영농만이 이루어지고 기타 경제활동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남북지역의 토지 이용도는 임야가 69.1%, 논 11.2%, 밭 5.4%, 도로 및 하천 등이 17.4%이고, 면적은 강원도가 경기도보다 2.1배 넓다. 군별 면적 역시 강원도의 인제와 화천, 철원 등이 경기도에 비해 압도적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다. 토지 이용 면적을 보면 강원도는 민북지역 중 임야가 전체의 80%에 육박하고 있는 반면 경기도는 45%에 불과하여 동산서야라는 한국 지형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경기도의 파주와 인천의 강화는 경지율이 50%에 이르나, 강원도의 화천, 인제 지역은 임야율이 95%를 상회하고 있어 큰 대조을 이루고 있다. 한편, 현재 이처럼 군작전상 제약을 받고 있는 민북지역의 영농 위주의 토지 활용은 통일이 되면 급속하게 다양해질 것이다. 출입 통제와 경제 활동의 제한으로 비교적 잘 보전되어 왔던 이 지역은 통일 후 경제적 무대로서의 다양한 활용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에 따라 단시간 내에 지역적 특성이 변모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보전 지역을 먼저 설정하여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를 최소한으로 감소시켜야 한다.
비무장지대의 유일한 공존과 협상의 장소가 판문점이다. 판문점은 전쟁 이후 미족의 뼈아픈 과거와 현실을 반영하는 곳으로, 대립과 평화적 협상이 공존하는 이중적 공간이 되었다. 서울 서북쪽 48km, 개성으로부터 동쪽 10km 지점에 위치한 판문점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간의 휴전회담이 1년 9개월 동안 159회의 본회의와 총 765회에 이르는 회의가 진행된 협상의 장소였다.
휴전협정이 조인되면서 이곳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쌍방의 각 장성급 장교 5명으로 구성된 군사 휴전 위원회의 본부 구역으로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판문점 구역은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유엔군과 북한군이 공동으로 공유하는 공동경비구역을 말한다. 즉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 Joint Security Area)은 군사분계선 상에 세워진 회담장을 중심으로 반경 400m의 원형지역으로 1954년 유엔측과 북한측의 협정에 따라 쌍방이 각각 35명씩 배치하여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분할 경비를 하고 있는 비무장지대 안의 특수지역이다.
한편 판문점 구역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북한이 왕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구실을 한다. 1953년 전쟁 직후 판문점을 통하여 8만여명의 북한군과 중국군 포로가 북으로 송환되었고, 1만 3천여 명의 유엔군 포로가 남으로 송환되었다. 또한 1989년에는 평양에서 열린 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던 전대협 대표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였으며, 1998년 5월 이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판문점을 경유하여 한우 수천두를 북한에 지원하였다. 현재 판문점에는 남북 대화를 위한 직통 전화선이 연결되어 있고 남북한 연락 사무소가 설치되어 있다.
판문점은 세계 역샤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오랜 휴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장소로 냉전의 마지막 남은 상징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족화해와 평화의 상징으로 변하고 있다.
판문점 내 건물로는 유엔측 자유의 집과 북한측 판문각 등 24개 동이 들어서 있으며, 양측이 각각 6개 초소를 운영하고 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는 쌍방 경비원들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 수 있었으나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 미군 장교 2명이 피살되고 9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는 양측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갈 수 없도록 하였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도 상호 대화하거나 물품을 교환하는 등의 행위는 엄격히 통제된다.
비무장지대 및 민북지역은 한국전쟁 시기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으나, 그 후에는 전적지와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왔다. 먼저 서부지역은 유적이나 유물이 다수 발견되어 역사 문화 관광지로 중앙지역은 6.25 전적지가 많이 남아 있어 안보관광지로 적합하고, 산악이 많은 동부지역은 자연 경승지와 싱태계 보존지역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최근 휴전선 서쪽 김포 애기봉에서 파주, 연천, 철원의 중부전선을 거쳐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안보관광코스는 주변에 비경이 많을 뿐만 아니라 역사, 안보 교육의 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먼저 경기도 파주에는 통일동산과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비롯하여, 임진각, 도라산전망대, 제3땅굴, 통일촌, 판문점, 대성동마을, 자유의 마을 등이 대표적이다. 강원도에는 철원의 제2땅굴, 월정리역, 노동당사, 승일교와 전쟁 당시 점령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는 백마 고지, 화천의 평화의 댐, 양구의 펀치볼지구, 제4땅굴, 을지전망대, 고성의 이승만 별장, 김일성 별장 등이 대표적이다.
비무장지대에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유적과 유물, 문화재가 분포하고 있다. 그런데 선사시대 유적의 경우 그간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몇몇 고인돌을 제외하고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삼국시대의 것으로는 주로 산성이 집중 분포하고 있다. 비무장지대와 평행하여 흐르는 임진강은 일찍부터 군사적, 정치적 대결의 장이 되어 왔으며, 특히 삼국시대 국방상 요충지로써 각축이 벌어졌던 탓에 군사시설물의 하나로 산성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또한 인제군에는 신라 경순왕릉과 마의태자 유적이 있으며, 특히 철원 지역을 위시하여 궁예의 태봉국 도읍지가 폐허 상태로 남아 있어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려, 조선시대의 사적은 개풍, 장단, 파주, 강화에 많이 있었으나, 전란 시기 대부분 파괴되어 소실되었다. 강화도에 4기의 고려 왕릉과 조선시대 한의학자 허준의 묘비가 있으며, 다수의 향교가 있었으나 대부분 파괴되어 소실되었거나 일부 변형되어 복원되었다.
파주, 연천, 철원 등지에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의 흐적이 있으며, 강화와 김포에는 조선시대의 해안 포대가 곳곳에 보존, 활용되고 있다. 물론 한국전쟁 시기 수많은 문화재가 파괴 및 훼소되었지만 반세기 동안 묻혀 있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문화재도 적지 않다. 다음은 1995년 한국관광공사에서 정리한 비무장지대 및 인접 지역의 관광 역사문화 자원도표이다.
전 적 지 | 유적·문화재 | 자연명소 | 안보관광지 | |
웅진군 |
6.25 전적지 고려·조선시대 성터, 봉수대 |
선사유적 심청 관련 전설 19세기 교회 건물 |
서해금강(두무진 해안) 용기포 검은모래 사장 콩돌해안 인당수 |
전망대 (황대호 장단 전망) |
강화군 | 삼국시대, 고려, 조선시대의 방어요새, 전적지 |
고조선, 고려, 조선시대의 성터, 사찰, 문화재 선사유적 해안방어요새 고려 왕릉 및 왕성터 고려자기 가마터 |
보문동천 마니산 함허동천 |
전망대(연백군조망) 해안안보관광지 (돈대, 성터) |
김포군 | 조선시대 방어 요새(문수산성, 월곶 해안 포대) |
선사유적(고인돌) 조선시대 향교, 서원 |
문수산 장릉산 |
문수산성 애기봉 제적봉 |
파주군 |
삼국시대 성터 6.25 전적지 |
선사유적 사찰터 진흥왕 순수비 노선시대 누각, 향교 경순왕릉 삼국시대 고분 조선시대 백자 가마터 |
감악산 파평산 공릉지구 |
6.25 전적지 및 기념공원 자유의 다리 판문점 오두산 전망대 통일공원 도라산 전망대 제1, 3땅굴 |
철원군 |
고려시대 성터 병자호란 전적지(전골총) 6.25 전적지(백마고지, 삼천지구, 대성산, 저격능선, 철의 삼각지) |
선사유적(고인돌, 유물) 궁예 왕성, 성터 도피안사, 심원사터 분청사기 가마터 백자 가마터 |
고석정 직탕폭포 금학산 칠담 천불산 매월대 삼부연 |
백골전망대(북한 김화지역 조망) 제2땅굴
|
화천군 |
6.25 전적지 (수리봉, 파로호) |
선사유적(고인돌 , 유적) 삼국시대 산성터 사찰터 |
파로호 광덕산 삼화지구 오봉산 화악산 |
전적비 평화의 댐 비목공원 |
양구군 |
6.25 전적지 (펀치볼, 백석산, 가칠봉) |
선사유적(고인돌, 유물) 산성터(노고성, 비종성) |
사명산, 대우산, 대암산, 비봉산, 두타산, 직연, 소양호 |
전적비 통일전망대 제4땅굴 |
인제군 |
신라산성(한계산성0 6.25 전적지 |
경순왕, 마의태자 유적 (상남면, 북면) |
방대산 내설악 소양호 |
전적비 통일전망대 |
고성군 | 6.25 전적지 |
건봉사 화암사 조서시대 전통 가옥 (왕곡 마을, 노명 고가) |
건봉산 향로봉 설악산 |
전적비 통일안보관 통일전망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