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둥역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쯤. 단둥역 앞에는 커다란 마오저뚱 동상이 서 있고 역사는 새로 지은 듯 아주 깨끗하고 현대식입니다.
이제 기차시간을 대충 보고 오늘 선양으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단둥에서 하루 묵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오후 3시 5분에 출발하는 K7378 열차가 밤 7시 조금 넘어서 선양에 도착하네요. 시간이 세시간쯤 남았으니까 단둥에서 유일한 볼거리인 압록강 철교와 북한땅을 멀리서 바라 볼 시간은 충분하겠습니다. 24위안짜리 잉쭤 좌석표를 삽니다.
역사 안에 있는 짐 보관소에 큰 배낭을 5위안에 맡기고 가볍게 강변을 향해 걸어 나가 봤습니다. 단둥역에서 압록강변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입니다. 가는 길에 늘어서 있는 가게들은 하나같이 한글을 병기한 간판을 달고 있어서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압록강 공원입구입니다. 커다란 조형물이 서 있고 뒤로는 압록강 철교와 나란히 마주한 ‘한중우호교’가 보입니다. 저 다리를 건너 중국과 북한의 물자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압록강 철교입니다. 1950년에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다리를 그대로 전시하고 있고 20위안의 입장료를 내고 끊어진 다리 끝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티벳이나 윈난성의 소수민족 마을을 여행할 때 소수민족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 찍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Kelly양도 티벳에서 그런 사진을 찍었더랬습니다만 이곳 압록강변 북한땅 앞에서 관광온 한족들은 한복을 입고 똑 같은 포즈들을 취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그런것이군요. 한복도 여기서는 소수민족의 전통복장 중 하나일 뿐인 것입니다. 좀 예쁜 옷으로 갖다 놓지!
다리 양 옆쪽으로 유람선 선착장이 있습니다. 유람선 타는 비용은 무려 50위안입니다. 코스도 짧고 볼 것도 없는데 왜 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강 건너 북한땅에서도 이곳이 신기한 구경거리인가 봅니다. 멀리 자그마한 관람차가 보입니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는군요. 그저 평범한 중국 마을 같아 보일 뿐입니다.
멀리 강이 갈라지는 중간에 아무것도 없고 덤불이 자라고 있는 섬이 보입니다. 바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했던 그 위화도입니다. 위화도는 북한땅입니다. 작은 섬은 아닌데 아무것도 없네요.
이 압록강변 공원은 관광객들도 많이 오지만 단둥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중국 어디서나 많이 보았던 웨딩촬영하는 커플을 여기서도 만났습니다.
단둥에서 볼 것들을 다 보았습니다. 압록강도 봤고 북한땅도 봤습니다. 하룻밤 자고 났더니 북한이 이렇게 눈앞이로군요. 신기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허름한 식당에 ‘조선랭면’이라고 씌여 있는게 신기해서 점심을 조선랭면으로 해결했습니다. 냉면이라기보다는 부산지방에서 파는 밀가루로 만든 밀면에 가깝습니다. 맛은 그저 그렇습니다.
3시간이면 충분할까 싶었는데 한시간 반동안 구경도 하고 밥까지 먹고 다시 기차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짐보관료가 살짝 아까워지는군요. 시간이 있는 김에 선양에서 바이허(백두산 관문도시)까지 가는 잉워(침대칸)표를 단둥에서 사려고 매표소로 갔습니다. 하지만 ‘메이요!’입니다. 중국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 중 하나입니다. 급 걱정거리가 생겼네요. 선양에서 어떻게 바이허까지 가지요? 13시간 걸리는 거리인데 말입니다.
기차시간을 기다립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생기면 잡생각이 듭니다. 집 생각과 사랑하는 사람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 이번 여행은 꽤나 힘들 것 같습니다.
선양행 K7378 열차 잉쭤칸은 늘 그렇듯 사람들로 넘쳐나고 복작거리는 모습입니다. 차장들이 승객들 면박주는 것도 그대로고 창밖으로 아무렇게나 버리는 쓰레기며 복도에 널부러진 해바라기씨 껍데기들.. 이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K열차인데도 에어컨이 없고 천정에 선풍기만 열심히 돌아갑니다. 날씨는 덥고 사람들의 체온으로 뜨거운 열차칸에서 5시 간을 꼬박 달리는 일은 아무래도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오랜만이라 더 그럴까요? 잠이 잠깐 들었다가도 다시 깨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선양인 베이징, 텐진, 상하이와 더불어 중국 4대 도시라고 합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전혀 아니올시다 같습니다. 뿌옇게 안개에 쌓인 도시는 저녁 8시가 조금 안된 시간인데도 어두컴컴합니다. 빌딩들과 아파트들에도 불이 들어온 곳이 별로 없습니다. 심지어 시내버스도 실내등을 끄고 달리고 있네요.
가장 붐빈다는 선양북역도 다른 큰 도시, 예를 들면 쿤밍이나 청두 혹은 시안같은 도시의 역보다 규모도 적고 붐비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역 앞에 늘 보이는 흔한 맥도날드도 하나 안보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메인 역사 1층에 맥도날드가 있더군요)
밤 8시에 어두컴컴한 대도시에 떨어졌을 때만큼 난감한 때는 없습니다. 기차역 앞에는 그 흔한 빈관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퉁화(通化)나 바이허(白河)행 표를 예매해야 하지만 매표소의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포기했습니다. 저녁도 못 먹어 배도 고프고 숙소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표를 사기 위해 시간을 허비할 수 없습니다.
기차역 앞으로 나오니 아주머니 한 분이 호객을 합니다. 아무리 중국어를 못한다고 말해도 꿋꿋하게 중국어로 열심히 설명을 하십니다. 80위 안을 부르길래 돈이 없으니 50위안 이상은 못 준다고 했더니 50위안짜리 숙소가 있다고 가자고 하십니다. 아주머니를 따라가 봅니다. 길을 하나 건너니 어떤 총각이 차를 대기시켜 놓고 있습니다. 다른 중국인 젊은 커플 하나도 같이 따라 왔네요. 하지만 근처 지리도 모르는 상황에서 얼마나 갈지 모르는 차를 타고 숙소를 찾아갈 수는 없습니다. 아주머니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 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선양의 유명한 한인거리인 ‘서탑가’(西塔街 시타제)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약북역 바로 맞은편에 버스 환승하는 주차장이 있습니다. 100배 즐기기에 나와 있는 서탑에 간다고 하는 609번은 보이지 않네요. 매점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216번을 타고 가라고 합니다. 일단 서둘러 버스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정류소 이름 중에 서탑은 없습니다. 옆에 서 있던 참한 아가씨에게 물어보니 한참 고민하다가 어디서 내리라고 찍어 줍니다. 그 아가씨 말 믿고 내렸습니다. 내리고 보니 서탑에서 두 정류장이나 떨어진 곳이더군요. 마침 내린 정류장에서 다른 버스를 다시 타고 서탑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선양북역에서 서탑가는 실제 버스는 216번이 아니라 262번과 152번입니다. 버스안에 탑승하면 노선도가 있고 정류소마다 이름이 써져 있어서 내리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 버스비 1위안/ 216번도 서탑 근처로 가기는 합니다. ‘태원북가’ 太原北街에서 내려야 합니다)
눈에 들어오는 낯익은 한글간판들… 이제 마음이 좀 놓이는 듯 합니다. 배가 고파서 일단 눈에 처음 들어오는 한국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시골밥상집’. 18위안짜리 김치찌개를 하나 시키고 민박집을 소개해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합니다. 밥을 먹고 나자 민박집 아주머니가 직접 오셨습니다. 아파트를 개조해서 민박집을 하는데 1박에 100위안이라고 합니다. 정말 상상도 못할 가격이지요.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아주머니를 따라간 민박집은 아파트 안에 방을 다섯개 정도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샤워와 빨래를 하고 에어컨을 켜 놓고 무선인터넷을 연결해 놓고 나니 이제 좀 안정이 됩니다. 단둥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저답지 않게 왠지 안정이 되지 않고 무척 불안했습니다. 첫날 밤 몸 누일곳을 찾고 나니 마음이 놓이네요. 기차표 관련 정보도 찾고 백두산 트래킹 관련 정보도 수집하면서 밤을 보냈습니다.
밖에서 갑자기 세찬 비바람 소리가 들립니다. 아까까지 말짱했던 하늘인데 갑자기 비를 퍼붓네요. 아마 숙소를 찾기 전에 비가 이렇게 왔다면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숙소에 누워서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곳을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너무 오래 쉬었나 봅니다. 안락함이 몸에 밴 듯 합니다. 내일이면 이곳에 더 있지 못하겠지만 오늘은 이렇게 빗소리를 들으면서 푹 아무 생각없이 푹 쉬어야겠습니다.
단동항에서 단동역까지
10:00~10:30 까지 탑승할 수 있는 동방명주호 전용버스가 부두 앞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15위안이며 승무원들이 세관 검색대를 넘으면 표를 팝니다. 버스 기사도, 안내양도 승무원 복장을 입고 있습니다. 깨끗하고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