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 순교성지
방문일자; 2014.03.07
절두산의 본래 이름은 양화진(버들꽃나루) 이었다
한강을 중심 무대로 삼은 조선왕조에서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로 구한말 조선과 서구 세력의 물리적 충돌은 수상에서 일어났는데, 양화진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한다. 대원군은 천주교 탄압을 응징하고자 프랑스 군함 세 척이 1866년 8월에 양화진까지 침범했다가 같은 해 10월 강화도에서 패되하는 병인양요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대원군의 척화 의지는 더 강화되었고 천주교도들에 대한 박해도 극심해 졌다 한다. 대원군은 오랑캐에게 더럽혀진 한강을 그들과 통하는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고 양화진 앞 한강물을 천주교도들의 피로 물들였다 한다.
그리하여 절두산이라는...절두산 이름만 들어도 으스스해 진다. kns
.
접시 모양의 지붕은 옛날 선비들이 전통적으로 의관을 갖출 때 머리에 쓰는 갓을 구멍을 갖고 지붕 위에서 내 있는 수직의 벽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칼을 그리고 지붕 위에서 내려뜨려진 사슬은 족쇄를 상징한다고 한다.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망명했던 개화파의 김옥균이 자객 홍종우에게 피살된 시신을 조선왕실에 의해 능지처참 되어
효시 당한 곳도 이곳 양화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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