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옛날그때

독립군가(獨立軍歌)

시인김남식 2008. 1. 11. 16:21

 

독립군가(獨立軍歌)
 

 

항일무장투쟁기인 1930~40년대에 만주·중국 일대에서 독립군이 부르던 투쟁가요. 1910년대 의병투쟁기의 노래나 그 이전 애국계몽운동기의 애국독립가류의 전통과 맥을 같이한다. 이 노래들은 대부분 기존의 선율을 빌린 개사곡이었다.

예를 들면 1910년대부터 불렸던 <독립군가>는 찬송가, <봉기가>는 일본군가를 개사한 것이다. 이청천 장군이 작사한 것으로 알려진 <광야의 독립군>은 루마니아의 이바노비치가 작곡한 <도나우 강의 잔물결>의 선율을 빌려 지은 것이고, <혁명군행진곡>은 프랑스의 <라 마르세유>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또 광복군 제3지대장이었던 김학규 장군이 가사를 붙인 <광복군아리랑>과 같이 민요에 가사를 붙인 경우도 있다.

 

1940년대에는 창작독립군가가 많이 만들어졌으나 해외무장투쟁의 3대 세력 가운데 하나였던 광복군의 노래만이 악보로 남아 전해진다. 이두산 작곡의 <선봉대가>, 장호강 작곡의 <광복군 제3지대가>, 한유한 작곡의 <압록강행진곡> <조선행진곡> <광복군 제2지대가> <여명의 노래> 등이 대표적이다.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단체인 '조선독립동맹'에도 유신(柳新)ㆍ정율성 등의 작곡가가 있었으며, <의용군행진곡> <독립행진곡> <조선의용군 추모가> 등의 노래가 있었으나 가사만 전해지고 있다.


민족 항일기에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조직된 독립군들이 불렀던 노래. 대한제국 말기의 의병과 대한민국 임시정부하의 광복군, 하와이에서 조직된 국민군에 의하여 불리던 곡들과 민족청년군가ㆍ학도군가 등을 포함한다.

1907년 우리 나라 군대가 일본에 의하여 강제해산되자 위정척사(衛正斥邪)와 창의구국(倡義救國)의 깃발로 일어선 의병들이 부른 민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가락에 맞추어 부른 <의병창의가(義兵倡義歌)>와 <의병격중가(義兵激衆歌)>가 그 효시이며, 이 무렵에 돌격대의 뜻을 지닌 <혈성대가(血誠隊歌)>도 불렸다.

 

 

1910년 국권 상실 후에는 항일운동이 더욱 격해지면서 독립군가의 수도 따라서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잘 알려진 <용진가>와 <독립군가>가 나오고, <신흥무관학교 교가>와 <영웅의 모범> 등의 노래가 불리었다. 1914년에 미국 하와이에서 국민군 군영 낙성식 때 부른 <국민군가>는 외국의 행진곡조에 맞추어 당시 국민군 단장인 박용만(朴容萬)이 가사를 지었다.

 

 

 

3ㆍ1독립운동 무렵에는 임시정부가 지정한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항일전선가> <우국지사의 노래> <독립지사의 노래> <독립군은 거름> <최후의 결전> 등 15곡 정도의 독립군가가 국내와 망명지에서 불려졌다. 1936년 이후 대부분의 독립군이 해산되고 광복군이 이를 대신하게 되자, 독립군가의 대부분이 광복군가로 이름이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광복까지는 <광복군 행진곡> <광복군 항일공작대가> <광복군 항일전투가> <광야를 달리는 독립군> <압록강 행진곡> 등 15곡 정도의 독립군가가 있었다.

 

최초의 독립군가가 나온 이후 해가 거듭될수록 곡과 내용이 다양해지고 그 수도 늘어났으며, 특히 1910년에서 1920년 전후에는 가장 많은 수의 독립군가가 나타났다. 노랫말은 독립과 광복 쟁취를 위한 항일투쟁정신과 애국심의 고취, 그리고 독립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였다.

 

노랫말은 지은이를 모르는 것과 안창호(安昌浩)ㆍ이청천(李靑天)ㆍ김좌진(金佐鎭)ㆍ이범석(李範奭)ㆍ박용만 등 독립투사들이 지은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곡의 선율은 새로 작곡된 것들과 기존의 전통 민요와 중국 곡, 러시아 군가, 간단한 서양식 행진곡과 찬송가 또는 창가에서 차용하여 온 것들로 나눌 수 있다.

 

작곡은 이범석ㆍ한유한 등에 의하여 이루어지기도 하였고, 이상준(李尙俊)ㆍ김형준(金亨俊)ㆍ홍난파(洪蘭坡)ㆍ백우용(白禹鏞)ㆍ안익태(安益泰) 등의 곡들을 빌려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빌려온 곡 가운데는 러일전쟁 무렵의 일본 해군군가인 <군함행진곡>도 있어 음악적으로 혼란함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노랫말은 보편적으로 4ㆍ4ㆍ5조로 되어 있고, 4분의 2박자나 4분의 4박자의 행진곡조를 주로 빌려 썼다. 음의 영역은 넓지 않았으며, 간단한 리듬에 곡의 길이도 짧아 외워서 노래하기가 쉬웠다. 선율 기교도 단순하였고, 많은 곡들이 서양음악의 평균율 음계를 따른 것이었다. 지금은 불리지 않고 있으나 현재 우리나라 군가의 모체구실을 한다 

 


독립군가- 가사

 

1.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2.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 낼건가 우리들이 약하다고 낙심 할건가

   정의의 날쎈 칼이 비끼는 곳에 이기리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3. 너 살거든 독립군의 용사가되고 나 죽으면 독립군의 혼령이 됨이

   동지야 너와 나의 소원아니냐 빛내리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4. 압록강과 두만강을 뛰어 건너라. 악독한 원수 무리 쓸어 몰아라.

   조국 강산 회복하는 날 만세를 불러보세.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싸우러 나아가세 싸우러 나아가세 싸우러 나아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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