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라는 시어머니
저는 일곱 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30대 직장 여성입니다.
아이 낳고 2년 정도 육아에만 전념하다가 복직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24개월 때부터 어린이집 종일반에 다니느라 감기를 달고 산 아이나 퇴근이 늦어지기라도 하면
발을 동동거리며 여기저기 도움을 청해야 했던 저나 돌아보면 눈물 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래도 믿을 데는 친정밖에 없더군요.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올케와 친정엄마가 한 번씩 아이를 맡아주곤 했지요.
그런데 그런 식의 생활이 시어머님 보시기에는 마뜩지가 않으신 모양이십니다.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자식은 어미가 키워야지 왜 이 사람 저 사람 불러대느냐고 하십니다.
어머님 당신만이 아니라 친정엄마한테 도움 청하는 것도 하지 말라시네요.
처음에는 사돈에게 미안한 마음에 그러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군요. 아이가 너덧 살쯤 되었던 어느 날 어머님이 저희 집에 오셨을 때
부엌일을 하다가 제가 뜻하지 않게 엿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앉히고 한참 열을 내며 가르치고 계시더군요.
"우리 강아지 할머니가 누구야? 이 할머니가 진짜 할머니지. 외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야.
외할머니는 외할머니지. 다시 한 번 물어볼게. 할머니 어딨지? 할머니는 딱 한 사람이야."
말문이 막혔습니다.
친할머니도 외할머니도 다 할머니이지, 어째서 외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닌 건지….
하지만 뭐라고 항변도 못 하고 그냥 속으로 삭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사건이 있은 뒤로는 저도 도저히 그냥 참고만 있을 수가 없네요.
한 달 전쯤에 어머님이 저희 집에 와 계실 때였습니다. 전화벨이 울리자 어머님이 받으셨던 모양입니다.
저한테 말없이 전화기를 건네시는데 표정이 안 좋으시더군요.
받아보니 저희 친정엄마였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제가 어머님 안색을 살피자 어머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화를 내시더군요.
사부인이 본인을 '○○ 할머니'라고 밝히더라는 겁니다. ○○ 할머니는 엄연히 당신인데,
그 말을 들으니 황당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사부인한테 한마디 하셨답니다.
○○ 할머니는 나인데 누구시냐고요.
물론 친정엄마가 본인을 ○○ 외할머니라고 밝혔더라면 더 좋았겠지요.
전화 받은 친할머니가 불쾌해질 일도 없었겠고요. 하지만 어쩌다 말이 그렇게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외할머니는 감히 할머니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대놓고 면박을 주실 수가 있나요?
사돈한테 그런 말을 듣고 딸에게는 별다른 내색 없이 전화를 끊은 우리 엄마
얼마나 놀라고 속상했을지 걱정했죠
그동안 어머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답답해도 말 못 하고 참고만 산 게 후회가 됩니다.
어른이시라도 잘못 알고 계신 것이 있으면 고쳐드리는 게 맞는 건가 싶어지네요.
그전에 별별다방 손님들께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정말 그랬나요? 외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었습니까?
친할머니도 우리 할머니일 순 없나요?
저는 손주가 모두 일곱입니다. 친손주가 둘, 외손주가 다섯이지요.
돌쟁이 늦둥이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아롱다롱 얼마나 흐뭇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어찌 된 게 친 손주만 자꾸 멀어지는 기분이더군요. 아무래도 자주 못 보는 탓이 클 테지요.
그리고 딸들은 수시로 전화해서 아이들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해주는데 며느리는 안부만 간단히 전해주니
아이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살기 바쁜 세상이고, 어느 며느리가 딸만큼 허물없고 살갑겠어요.
이래서 친구들이 친손주는 남 같다고 하는구나, 고개를 끄덕일 뿐이지요.
어쨌거나 무탈하게 잘 키워주기만 하면 며느리에게 감사할 일이지요.
그러나 제 솔직한 마음에는 며느리의 교육 방식에 한 가지 불만이 있기는 합니다.
아이들에게 할머니 호칭을 잘못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 살, 여덟 살 먹은 손녀들과 얘기를 해보니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은 외할머니를
'우리 할머니'라 부르고 있더군요.
친할머니인 저는 '수원 할머니'라고 부르고 있고요.
할머니가 둘이니 구분은 해야겠지만, 손주에게서 수원 할머니라고 불리는 게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친할머니, 외할머니라고 구분하면 될 것을 왜 꼭 우리 할머니 남의 할머니 식으로 구분하는지
그게 언제나 저한테는 불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며느리한테 뭐라고 말은 못 했지요. 대수롭지 않은 일로 며느리 스트레스 준다고 할까 봐서요.
답답한 마음에 별별다방 손님들한테만 하소연합니다.
아무리 친정이 가깝고, 외할머니가 더 살가운 세상이라지만 호칭만큼은 바로 알고 커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 할머니, 남의 할머니로 나누지 말고 친할머니, 외할머니로만 구분해주면 저는 정말 다른 불만은 없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