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한민국

인물 에세이 노태우

시인김남식 2018. 1. 20. 11:15

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10>노태우(1932~)

김동길 단국대 석좌교수·연세대 명예교수  

문학과 음악 좋아하던 그 작곡도 할 수 있었고 노래도 곧잘 부르며 누구와도 싸우기 싫어해
YS가 법정에 세웠지만 YS 부정엔 끝내 침묵 10년째 병상에 누운 그 군인을 할 사람도 정치를 할 사람도 아니었다

조선일보 / 이철원 기자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에 오른 사람들 가운데 세 사람이 팔공산의 정기를 마시며 자랐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대구의 팔공산은 위대한 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경북고교를 마친 청년 노태우가 육군사관학교를 지망한 것은 꼭 군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고 작곡도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노래를 곧잘 불렀고 운동에도 소질이 많았다. 성적도 좋은 편이라 일반 대학 진학이 가능했지만,


그가 국비 장학생만 모집하는 육군사관학교를 선택한 것은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 소위로 임관한 그는 군인으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거기서 사귄 전두환·김복동·정호영과 절친한 사이가 됐고 김복동의 미인 누이동생과 결혼할 수 있는 행운도 누렸다.

그는 순조롭게 대령까지 올라갔고 별을 달았다. 5·16이 터지지 않았다면 12·12사태가 없었을 것이고 육군 소장 노태우는 대장 계급도 달게 됐을 것이고 육군 참모총장 자리도 그를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당한 무리수를 두면서 전 장군이 11대 대통령이 되고 12대 대통령도 됐는데 가장 유능한 장군 중 한 사람이던 노태우는 어쩔 수 없이 거기에 휘말려 들어간 것뿐이다.


민주화 열기 속에 총선이 불가피하게 됐을 때 노태우는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생각이 없다"고 전두환에게 통보한 적이 있었다. 성격이 불 같은 전두환은 매사에 차분하고 합리적인 노태우와 충돌이 가끔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군부가 밀어주면 당선이 확실시된다며 노태우로 하여금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를 수락하라고 강요하면서 선거 자금과 인력 동원을 약속한 것도 사실이다. 그가 13대 대통령이 된 것은 자의만도 타의만도 아니었다.


청와대에 치고 들어가 그 주인이 된 유능 인사가 열두 사람이나 된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호감을 보인 사람은 노태우 대통령이었다. 노 대통령은 나를 두 번이나 단독으로 청와대 점심에 초대해줬고 친절한 말을 아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가 한 번은 "며칠 뒤 미국으로 강연을 떠나야 한다"고 했더니 비서를 시켜 조그마한 돈 봉투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나를 감동시킨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초청을 받았을 적에 나는 대통령의 초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부르시는 그날 공교롭게도 대학 동창 아들의 결혼식이 있는데 그 결혼식 주례를 맡았으니 그 시간에 가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말했더니 청와대에서 곧 답이 왔다. "그날이 아니라도 좋으니 다른 날 다시 모시겠습니다." 나의 두 번째 청와대 행차는 일주일쯤 뒤 이뤄졌다. 그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3당 통합으로 여당의 안방에 들어간 김영삼이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공천을 받고 대통령이 됐다. 국민의 예상과 달리 당선된 14대 대통령은 엉뚱한 결단을 하나 내렸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해 법정에 세운 것이었다.


노 대통령 재임 중의 부정을 김영삼은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김영삼의 부정과 잘못을 대통령이 모르고 있었을 리 없다. 그는 법정에서 김영삼의 부정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나도 국회에서 일하던 때였다. 보좌관을 시켜 노 대통령에게 편지 한 장을 전했다. 그 편지는 틀림없이 전달됐다. 그러나 그는 내가 당부한 대로 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모든 일을 가슴에 묻고 가시면 안 됩니다. 사실대로 법정에서 다 털어놓으세요." 그런 내 부탁을 그는 묵살하고 침묵을 지켰다.

그는 누구와도 싸우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육사를 지망한 것은 집안 사정 때문이었다고 이미 말했다. 그런데 노태우라는 한 인간의 타고난 재능은 문학과 음악에 있었다. 그는 군인을 할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정치를 할 사람도 아니었다. 육군 대장이 안 되고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면 녹초가 될 때까지 권력에 의해 그렇게 두들겨 맞아야 할 까닭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가 평생의 친구요 동지인 전두환과 그 댁의 안주인을 백담사로 유배시킨 것은 의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들 비난하지만 나는 그렇게만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고민하였을 것이고 전두환이 국민 앞에 욕 볼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그런 조처를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태우를 "손 봐야겠다"던 전두환이 얼마 뒤에 다 용서한다고 했겠는가. 법원에서 선고한 추징금 2628억원을 다 갚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마침내 완납한 노태우 대통령은 정말 양심적인 인간이라고 나는 칭찬하고 싶다.


전직 대통령인 그가 퇴임하고 받은 충격이 하도 엄청나기 때문에 그는 오늘도 병상에 누워 있다. 사회적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지가 어언 십년이라고 들었다. 얼마나 심중에 고통이 심했으면 운동으로, 훈련으로 다져진 그의 단단한 육체가 그토록 쉽게 무너졌겠는가.

그를 생각하면 인생은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 괴로움만 가득 찼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군인이 정치에 뛰어드는 일이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같이 팔공산 정기를 마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될 수가 없었다. 왜? 대통령 노태우는 소질이 전혀 없는 직업을 택한 것이다. 목적을 위해 잔인해야 했을 때 그는 그러지 못했다. '물태우'라고 놀림을 받으면서도 노태우는 양심 하나만은 지키고 살아온 훌륭한 한국인이다.



출처 =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9/201801190156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