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옥박사 생가
조병옥(1894~1960년)박사생가 솔새김남식
조병옥 박사는 일제 강점기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겸 정치가로 대한민국 건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해방정국에서 공산주의와의 대결에 최첨병 역할을 했으며 이승만 정부에서 경무부장을 지냈던 사람이다
조병옥은 독립운동가였고 대한민국의 건국 유공자이다.
그의 아버지 조인원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아들 조순형은 국회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해방정국에서 조병옥은 제주4.3사건때 진압대 최 고위층에 있었으며 6.25 때는 인민군의 대구 폭격이
벌어질 때에도 후퇴를 거부하고 각지를 돌며 민심을 안정시키는 연설을 하였다
조병옥박사의 생가는 병천에서 청주로 나가는 삼거리 창들교차로 삼거리를 지나 등성이 고개를 넘어서면
내리막길 에스오일 주유소 가기전 이정표가 있다
가셨다 떠나셨다 해공선생 뒤를 따라 장면박사 홀로 두고 조박사도 떠나갔네
가도가도 끝이없는 당선 길은 몇구비냐 자유당에 꽃이 피네 민주당에 비가오네
까가중머리 소년은 그 옛날 뜻도 모르고 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조병옥 박사는 대한민국정부 초기과정의 굵직한 역사를 겪으면서 후에 대통령 후보 공천을 받아서
입후보하려 했으나 지병으로 미국까지 가서 수술을 받던 중 선거일 1개월 앞두고서
죽음을 맞이하자 정국은 잠시 혼란에 빠젔다
그리고 이어진 419혁명, 그래서 그의 묘가 수유리 419묘지에 있는 걸까?
조병욱 박사는 전형적인 옛날 부잣집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나 배재학당과 평양숭실전문 학교 미국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1927년 신간회 조직에 참여, 광범한 항일 민족전선 형성에 앞장섰다. 또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53년에는 내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같은해 2월 15일 불의의 신병으로 미국 육군병원에서 67세의 일기로 서거했다.
1894년 병천면에서 태어난 조병옥 박사 1902년 태어난 유관순 열사 두사람은 용두리 한마을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고 두사람의 아버지 또한 아우내장터 3.1만세 운동을 같이 논의 했다고 한다.
정부는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1995년 4월 20일 공적을 길이 선양하고 후세에 본받을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용두리 261-6번지에 생가를 복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