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산성과 일보과
호산산성과 일보과(一步跨)
1. 일보과
호산장성(虎山長城) 관광지에 속해 있는 일보과(一步跨)는 말그대로 한 걸음에 북한으로 갈 수 있다는 곳으로
순전히 한국 관광객을 위해서 만든 듯한 장소이다
일보과(一步跨)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접경지역으로 압록강의 지류 폭 5m의 개천 하나만 건너면 바로 북한이다
예전엔 이곳에서 중국와 북한사람들이 작은 돛배를 이용하여 서로 물물교환을 했었지만
지금은 상호신뢰가 떨어져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압록강 국경선답게 양쪽모두 철조망이 드리워저 있었다
내가 갔을때 중국쪽 일보과 마을 아낙들이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국경선 답게 여러가지 주의 사항이 그려진 간판이 일보과 앞에 서 있다
호산산성에서 위에서 내려다 본 북한 방산마을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건널수 있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그러나 건널 수 없는 현실이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로 한국으로 일하러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이후
동북 변방의 낙후한 농업지대에 불과했던 연변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고 전한다.
수교 후 한국을 다녀간 조선족은 복수 방문자를 합쳐 300여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실제 연변주정부 통계에 따르면 1998년부터 10년 동안 한국에서 일하는 연변 조선족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연간 10억 달러를 넘어 연변주 GDP(국내총생산)의 33%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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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연변을 중국내 소수민족 자치지역 가운데 손꼽힐 만큼 부유한 지역으로 탈바꿈을 시켰다.
너도나도 한국에 돈 벌러 간 사람들이 지금은 한집 건너 한집 꼴이라고 한다.
그러나 연변 조선족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안겨준 대신 적잖은 사회 문제를 야기시켰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게 가족 해체로 부부 한쪽이 오랜 한국생활을 하면서 생긴
부부간 불화 때문에 해마다 이혼 부부가 늘고 있으며
특히 부모가 떠나면서 남겨진 자녀들이 비행 청소년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연변자치주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1953년 첫 조사 당시 70.5%를 차지했던 연변자치주 조선족 비율은 최근 36%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이는 티베트자치구內 티베트족이 10년전보다 수없이 증가하여 90%를 차지한 것과 확연히 비교가 된다.
대도시로 이농하면서 조선족들이 버린 농토는 대부분 한족(漢族)이 차지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농촌지역에서 조선족을 찾아보기 힘든 지경으로
조선족 비율이 30%이하로 떨어지면 언제 자치주 지위가 박탈당할지도 모른다고 전한다.
제 살길 찾아 거주지를 옮기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핏줄들이 그터를 지키지 못하면 누가 그 땅을 우리의 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지금은 상당히 심각한 모양이다. solsea
2. 호산산성
호산산성은 단동에서 압록강 상류 쪽 30km 지점에 있는 고구려 천리장성의 시발점 박장산성이다
고구려 때 수나라와 당나라가 쳐들어왔을 때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했던 고구려의 군사 요충지이다
박장산성을 중국에서는 호산장성이라 이름 붙이고 동북공정에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주장하며
지금은 만리장성과 똑같이 복원하여 한국사람을 관광객으로 받아 드리고 있다
호산산성이 만리장장의 동쪽끝이라고 이치에 맞지않은 논리를 펴고 있는 중국의 역사외곡 동북공정의 시발점
산성 정상에 오르면 북한땅과 멀리 단둥 시내를 조망 할 수가 있다
산성에 오르니 압록강 건너 북쪽 땅이 눈 아래 내려다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