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령 만리장성
팔달령 만리장성 솔새김남식
1995년 12월29일
만리장성을 가기위해 아침 일직 일어나 창밖을 보니 약 1,5cm 가량의 눈이 샇여 있었다.
좀 처럼 많은 비가 오지 않는 천진지방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것은 드문 일이라 한다. 8시 출발하는
베이징행 열차를 놓친 관계로 빙장도에 있는 코오롱 고속뻐스 정류장으로 갔다.
거리에는 눈이 쌓여 미끄러웠다.
정류장에 와보니 고속도로에 눈이 녹을 때까지 출발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곳 중국은 눈이 많이 오면
아예 고속도로를 출입구를 아예 막아 버린다고 한다.
안전사고 인지 아니면 안전 대비 대책이 없어서 인지, 그런 것은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고가 날 경우에
이들은 복잡하고 그것 보다도 만만디 정신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베이징을 갈까말까 망설였다, 이왕 나온김에 택시를 타기로 하고 텐진역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역전앞엔 짜이날? 하며 호객하는 호객꾼과 그리고 택시 기사들로 북적인다.
베이징까지 가겠다고 흥정을 하고 차에 오르려 하니 정말 그리고 아름다운 중국 까오자와 합승을 하게 되었다.
말이 통해야 대화를 하지요! 몇마디 인사만 나누고 만리장성까지 동행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
가이드 해주는 정기호에게 치근덕 거렸으나 순진한 그는 아무 말이 없다. 아마 같은 중국인이라 그렇까?
어쨌든 그러는 사이에 차는 고속도로 입구에 들어섰다.
도로는 이미 바람에 눈이 날려 쌓여 많지 않았다. 다행히 우리가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들어 갈 수 있었다.
운전기사는 자기네 택시 영업소에 베이징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헨드폰으로 전화를 한다.
차장 밖으로 보이는 나무 가지에는 하얀 눈 꽃이 피여 있었다.
그런데 땅(밭)에는 눈이 하나도 없어 풍경이 참 이색적 이였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었는 눈풍경 이였다.
150원(우리나라돈으로 15,000원) 을 주고 베이징에 도착하니 여긴 눈이 내리지 않았다.
텐진과 베이징의 거리는 서울과 청주 가는 거리와 같으며 기차로 2시간이 소요된다.
만리장성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북경역, 그리고 서베이징으로 돌아 다녔지만 헛 수고 였다.
가이드 정기호는 미안해 한다. 그도 그렇치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차 시간을 말이다.
그가 버스를 타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12시를 넘어서 북경에서 택시비 250원을 주고 출발 할 수가 있었다.
만리장성은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한시간 정도의 고속도로를 달려 가서 외몽고로 넘어가는
팔달령(八達嶺) 이란 곳에서 부터 만리장성이 시작된다.
회사 차로 갔던 길이 아닌 택시는 다른 길로 가고 있었는데 꼭 서부영화에 나오는 그런 곳 이었다.
베이징 시내를 벗어났다.
도데체 어디서 부터 만리장성이 시작 되는지 무척 궁금한 마음으로
차창 밖을 내다 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시커먼 산들이 나타나는 것은 좀 색다른 느낌이였다.
평야처럼 평탄한 길을 차로 한시간 쯤 달린 것 같았다.
고속도로에서 이곳 택시의 평균 속도는 약 80km를 달리고 있으니 택시의 성능은 짐작이 간다.
베이징에서 만리장성으로 가는 팔달령이라는 고속도로는 한가했다.
한시간쯤 달리면 조그만 市를 지나서 초라한 시골 마을을 한참을 가면 구부러진 고개산길이 나타난다.
그길을 따라 가는 기찻길이 모습이 퍽 아름답게 보였다. 이 길이 외몽고로 들어 가는 길 이라고 한다.
이국의 맛, 장성으로 오르는 길목에도 ‘삼성전자’광고와 그리고 ‘에넥스’ 부억가구 광고가 나타났을 때
나도 모르게 이상한 감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이게 애국이 아닌가 말이다.
아마 한국 사람 이라는 마음에 동요가 아닌가 한다. 여기서 부터 만리장성이 시작된다.
만리장성은 그 스스로가 중국의 역사이고 그 옛날 중국 백성들이 엄청난 勞役과 피와 땀이 서러있고
限이 맺혀 있는 城인 곳이다. 인류가 축조한 지상 최대의 건축물로 중국 인들은 이것을 장성 이라한다.
이 곳을 만들기 위해 잃은 목숨이 얼마인가. 노부모와 아 내와 자식을 두고 장성을 쌓으러 가는 길은
죽음과도 같은 길이였고 자식과 남편을 기다리며 애태웠고 장성을 쌓다가 힘에 지쳐죽은 장정들을
땅 밑에 묻고 그 위에다 장성 을 만들었다는 哀話이 있는 장성 이란다.
이 장성은 자금성에 있는 금빛 찬란한 황제와 궁녀들과 중신들인 그들이 곤명호수 유람선에서
술잔과 궁녀들의 교성이 어울렸고 역모 와 암투 그리고 피 비린내를 위해 축성했을 것 이라는 생각 이다.
장성은 제나라 때 시작하 여나라의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여 완성시킨 것이다. 기원전 221년 일이다.
성벽의 높이와 폭이 5미터 정도, 길이는 6700km이란다. 활쏘는 구멍이 규칙적으로 뚫려 있고,
성벽과 성벽이 교차되는 지점에는 관문을 설치 하여 군사로 하여금 수비토록 하였다 한다.
이 장성은 거대한 중국인들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으로, 피의 원한이 맺힌 장성이 지금의 후세들 에게 많은 외화를 벌어 들이게 하니 새삼 감게무량 했다. 15억의 거대한 중국 인적 자원이였기에 가능하다. 인류 최대의 유산인 만리장성은 우주인이 달에서도 불 수 있다는 중국 고대의 군사 방어벽, 춘하추동 각기 특색이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오는 가는 이유는 만리장성은 여름에 몇번 다녀 왔지만 눈쌓인 장성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팔달령은 이름 그대 로 사통팔달 하는 곳 이므로 관광의 중심부이다.
팔달령을 넘어서 외몽고로 가는 차들을 바라보니 조금은 기분이 이상하였다. 110m마다 돈대( 敦臺)가 있고 그 위에서 조망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관관용 말과 낙타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기도 한다. 토산품 가게에서는 서툰 한국말로 관광 일행들 에게 하나라도 더 팔려고 외처대고 있었다.
만리 장성은 북경에서 서 북쪽으로 70 km 지점에 있다. 서베이징 역에서 뻐스는 하루에 3번 밖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니까 일반 인민들은 평생동안 만리장성 구경을 갈 수가 없다는 애기인지도 모른다.
바람이 어찌 세차게 부는지 택시 기사가 한시간의 관광시간을 주었는 데도 만리장성을 올라 갈 수가 없었다.
바람에 내가 날아 갈 것 만 같았다. 가다 말고 그냥 내려왔다.
어쩌면 너무 많이 기대를 하고 만리장성을 찾은 것 같았다. 그래도 산능선 장성위에는 장성길은 따라
사람들이 오르 내리고 있었다. 특별히 볼 것 없는 만리장성 이었지만 모든 것이 궁금했는데 눈으로 이제
그것을 보았으니 만리장성이란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이곳에 뿌린 관광비는 그들 조상이 내려준 은혜라는 것에 새삼 놀랬다.
우리 조상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물려 주었는가를 잠시 생각을 해 본다.
돌아오는 길 에는 베이징에서 막 기차를 타고 텐진에 도착 하니 밤 11시가 되었다.
나는 기차에서 피곤해서 졸고 있는데 가이드 정기호 친구는 맥주를 마시고 있다..
오늘 가이드 해준 기호에게 감사 드린다.
그리고 여름이 되기까지 만리장성을 서너번을 더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