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성 고궁박물관
자금성 고궁 박물관
솔새김남식
1993년 5월 16일
자금성 여기는 고궁박물관이라고 한다.
자금성 대문앞에 서니 그 규모의 크기나 장엄함이 나의 상상을 넘는 스케일 인것이다.
거대한 대문을 들어서면 광장과 전각들
그것을 지나면 또 커다란 문으로 들어가고 또 사..오....육, 칠, 팔, 구문을 들어 가도
같은 광장과 건물들이 혼을 홀랑 빼앗았다.
九重宮闕이란 말이 실감났다.
대문마다 머리통 만한 못들이 박혀 있었고 대문 넓이는 30평 정도이고 두께는15Cm
도데체 이런 대문 속에는 별천지가 있으니,,,,,,.
전각의 길이가 960, 동서가 750미 터 둘레가 3.5Km에 60여채의 전각에 9999칸의 방에
수천명의 궁녀들이 황제라는 한 남성을 위해 평생 독수공방을
황제가 하루에 한방씩 찾아가 후궁들과 잠을 잔다하여도 무려 27년의 기나긴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만한 궁궐을 짓고 정원을 만들고 건물마다 보석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얼마 만큼의 국력이 탕진 되었고
백성들의 고혈을 얼마나 짜내야 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지금의 자금성은 인민의 것도 아니고 황제의 것도 아닌 다만 화려하고 웅장한 역사의 산물일 것이다.
너무 크고 황당하여 보는 사람이 약간은 멀미를 낸다.
이렇 때는 아담한 우리나라 경복궁이 더 좋은 것 같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대충 구경을 했다.
자금성에 온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예날 황제가 입었던 옷을 입고 에햄! 하고
황제가 된 것처럼 사진을 찍어 보고 잠시 그들 문화를 이해 하였다.
북경(北京)의 자금성(紫禁城)은 15세기 초 明나라의 3대 황제인 영락제가 남경(南京)으로부터
북경으로 천도할 때에 원대(元代)의 고궁유적을 기초로 세우기 시작하여
영락(永樂) 18년에 완성한 것이다. 당시 북경성내에는 황성으로 불려지는 높은 성벽이 있고
그 황성에 둘러싸여 있는 자금성은 바로 북경성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자금성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을 이루고 있고, 면적은 72만 평방미터이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중추선상에는 남쪽으로부터 태화문(太和門),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 건청문(乾淸門),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곤녕궁(坤寧宮), 곤녕문(坤寧門), 천일문(天一門), 흠안전(欽安殿), 승광전(承光殿), 순정문(順貞門), 신무문(神武門) 등 주요한 궁전과 궁문이 나란히 세워지고
그 가운데 오문과 신무문은 자금성의 남북 성문을 이루고 있다.
또한 자금성의 동서 양측에도 동화문(東華門), 서화문(西華門)이 있다.
중추선의 좌우양측에는 각각 대칭되게 회랑이 줄지어 있고, 크고 작은 전당과 누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배열이 정연하고 통일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또한 변화가 풍부한 것이 많다.
자금성은 청대에 거듭된 화재로 전소가 되었는데, 여러 차례 보수한 결과
기본적인 모습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고궁에 들어오는 저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이끌어가고 있으며 우리나라 고궁에는 비교도
안될만큼의 구모와 관람객들이다.
그리고 내국인과외국인이 각각 다른 입장료를 받는 이곳의 관광 수입도 적지않을 것이다.
깃빨을 들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도 적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