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한민국

한강다리는 모두 몇개일까

시인김남식 2013. 6. 17. 16:04

한강다리는 총모두 몇개일까   솔새김남식

 


우리나라 경제발전 기적의 한강이 6 25 때는 사람이 다닐수 있는 다리는 달랑 두개였다

한강 인도교와 광진교 그리고 한강철교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4일 후인 6월 29일 폭파해서 당시 피난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떨어저 죽었다
서울을 지킬터이니 피난을 가지 말라고 방송해 놓고서 당시 정부가 먼저 대전으로 피난을 갔다고 한다 
그후 한강다리를 누가 폭파하라고 명령을 했냐고 그 문제는 이승만 정권의 최대 잇슈였으며
국회에서 난리 법석을 했었다


당시의 戰況으로 볼때 시간의 여유가 어느 정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기 폭파로 인하여

자체 손실이 컸다는 이유의 여론이 들끓자 이승만 정권은 8월 28일 폭파 책임을 맡았던

공병감 최창식 대령을 '적전비행죄'로 체포하여 1950년 9월 21일 사형을 집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후 최창식 유족들은 여러번 재심을 거쳐서 1962년 무죄 판정을 받아 사후 복권 되었다.

즉 명령에 의해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한강 철교의 폭파는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이 지시했지만 총리 이범석이

건의하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재심에서 폭파 명령의 책임은 채병덕에게 있는 것으로 결론 내려졌고

당시 최창식의 고문이었던 미군 크로포드 소령은 당시 폭파명령을 내린 것은 육군참모총장의

고문으로 있던 미군 장교라고 증언하였다.
당시 지휘계통상 채병덕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던 사람은 하우스만 대령이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었으니 딱히 누구라고 말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우찌 되었던 전쟁중 임시로 복구하여 왕복 2차선으로 사용하다가 1958년 4차선으로 완전 복구하였다 
당시 한강 인도교는 폭파됐지만 화물을 수송하던 한강 철교를 제대로 폭파되지 않아
조선인민군은 약간의 보수공사 후 빠르게 서울을 넘어 남침을 계속하게 되어 원한 맺힌 한강다리가 되었다 

     

 

 1. 팔당대교 - (경기도 하남시 창우동 ~  남양주시 조안면을 잇는 다리)

 2. 미사대교 - (서울 ~ 춘천간 고속도로 상에 놓여지는 다리) 

 3. 강동대교 - (서울시  강동구 강일동 ~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을 잇는 다리)

 4. 암사대교 -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을 잇는 다리)

 5. 광진교 -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 강동구 천호동을 잇는 다리)

 6. 천호대교 -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 강동구 천호동을 잇는 다리)

 7. 올림픽대교 -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 송파구 풍납동을 잇는 다리)

 8. 잠실철교 - (서울시 광진구 구의동 ~ 송파구 신천동을 잇는 철교, 지하철 2호선 강변 ~ 성내역을 잇는 다리)

 9. 잠실대교 -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 ~ 송파구 잠실동을 잇는 다리)

10. 청담대교 - (서울시 광진구 노유동 ~ 강남구 청담동을 잇는 다리)

                       * 복층교라고 하여, 위층은 도로로 사용하고 아래층은 지하철 7호선이 다니고 있음

11. 영동대교 -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 강남구 청담동을 잇는 다리)

12. 성수대교 -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다리)

13. 동호대교 -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다리, 지하철 3호선과 도로가 나란히 있음)

14. 한남대교 - (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 강남구 신사동을 잇는 다리)

15. 반포대교 - (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 서초구 반포동을 잇는 다리, 지하철 4호선과 도로가 나란히 있음 ,

                       반포대교 아래에는 잠수교가 있음)

 

 

16. 한강대교 -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3가 ~ 동작구 본동을 잇는 다리)

17. 한강철교 - (지하철 1호선이 다니는 다리 , 용산 ~ 노량진역 사이를 잇는 다리)

18. 원효대교 -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4가 ~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 다리)

19. 마포대교 - (서울시 마포구 마포동 ~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 다리)

20. 서강대교 - (서울시 마포구 신정동 ~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 다리)

21. 당산철교 - (지하철 2호선이 다니는 다리, 당산역 ~ 합정역을 잇는 철교)

22. 양화대교 -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 영등포구 당산동을 잇는 다리)

23. 성산대교 -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 영등포구 양화동을 잇는 다리)

24. 가양대교 -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 마포구 망원동을 잇는 다리)

25. 마곡대교 -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 ~ 경기도 고양시 현천동을 잇는 다리, 인천국제공항 철도)

26. 방화대교 -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 북로 분기점을 잇는 다리 공항고속도록)

27. 행주대교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동 ~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을 잇는 다리)

28. 김포대교 -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 ~ 고양시를 잇는 다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29. 일산대교 - (경기도 김포시 걸곶동 ~ 고양시 현천동을 잇는 다리 )

30.월드컵대교 - (마포구 상암동 ~ 영등포구 양화동) 2021년 완공 예정



그리고 60년이 지난 지금은 한강 다리가 총  30개 이다

앞으로 남북 통일에 대비하여 경기도 김포와 고양을 잇는 교량 2개가 추가로 건설되며,

가양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 '월드컵대교'가 2021년 개통 예정이다

팔당댐 공도교는 2004년 부터 폐쇄되었다.

팔당댐 측에서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폐쇄된 교량입니다. 길이는 440m입니다.

이 도로는 1996년 대통령령이 발령되어 법적으로 도로가 아닌 것으로 분류 되었다.

  


한강 다리의 필요성


서울은 1392년 7월 17일 태조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세운 다음 1394년 11월 26일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오늘에 이르는 600여년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의

민족사의 중심 역할을 하는 수도 서울로서 남쪽 지방과의 육상교통은 반드시 한강을 거쳐 갈 수 밖에 없었으니

한강의 교량은 문화의 발달과 더불어 변천하게 되었다.


국왕은 선왕의 능에도 참배하고 온천에 가거나 나들이를 하기 위하여 1년에 몇번씩 한강을 건너야만 했다.

이같이 국왕 행렬이 도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큰 배 70여척을 가로로 이어

서로 묶은 뒤 그 위에 널판지를 깔아 5,6필의 기마가 옆으로

서서 자유로이 건널 수 있도록 오늘 날의 부설교와 같은 교량을 세우곤 했었다.

오늘의 한강대교 자리에 놓여졌던 이 다리는 백성의 배를 일정기간 징발하여 사용했는데

임시 다리를 놓는데 한달 해체 하는데 한달이 걸리는 등 강변에 사는 백성들 원성을 사기도 했다.


그후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생활권의 확장과 더불어 교통량이 증가되고

한강을 도강하는 보다 많은 물동량의 수송이 요구 되었다.
토목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한강에 최초로 건설된 교량은 경인철도 부설공사와 병행한

용산과 노량진 간을 연결하는 한강 철도교로 1897년 착공하여 1900년에 준공 되었다. 
수도 서울의 발전과 인구 집중으로 한강상에 많은 교량들이 설치 되었으며

토목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시대에 부흥하는

지금은 여러형식의 교량이 세워져 시민의 교통 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solsae kns

  


채병덕(1915~1950)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하여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4월 제4대 육군총참모장 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서울이 함락되는 등 패전을 거듭하자 총참모장직을 사임하고 영남편성관구 사령관으로 있을때

공격해 오는 적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전 했다가 그해 7월 27일 하동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1계급 특진, 중장을 추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