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의 생가 전북 장수군 주촌리 민속마을 솔새김남식
위치 ;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장수군은 논개사당은 지방 문화재 46호로 지정하여 주논개의 순절을 높이 찬양하는 뜻에서 의암사라 칭했고 또한 주촌마을의
원래 생가는 1986년 대곡저수지 축조로 수몰 되었으며 이곳은 논개 할아버지가 서당을 차렸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2만평에 이르는 생가지를 복원하여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장안산 군립공원이 있어서 등산도 할 겸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나본다
논개(論介,1574∼1593)는 진주목의 관기로 임진왜란 중 2차 진주성싸움에서 이긴 왜군이 진주 촉석루에서
자축연을 벌일 때 왜장을 남강가로 유인하여 끌어안고 강물에 빠져 순절한 의기義妓 이다.
일부 기생이라고 기록된 것은 일제의 역사 왜곡과 식민사관에 의해 빚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각종 문헌 및
고증을 통해 확인되고 있으며 그녀는 장수현감 최경희의 애첩으로 현감이 임진왜란때 진주성으로 부임하자 따라 갔다고 한다
논개의 순국사실을 진주사람들 입으로 전하고 있었는데 국가로 부터 인정을 받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영조시대에 와서 비로소 인정을 받았다고 전한다
논개가 어린 시절 뛰어 놀았다는 정자와 연못이 있어서 고향 마을 뒷산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락지(반지) 형태로 조형된 만해 한용운 지은 논개 추모 시비가 있다
이곳에는 주논개와 최경회의 비각이 있으며 만해 한용운 지은 논개 추모 시비도 있다
의암 이라는 칭호는 논개가 떨어저 죽은 바위를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고 전 한다
논개 가족들이 살았다고 하는 전하는 생가의 모습
논개의 묘는 이곳에 없고 함경 함양군 서상면 방지리에 최경회와 그의 정실이 안장된 묘 아래
논개의 묘가 있다.
전북 장수 출신으로 성은 주씨(朱氏). 이름은 논개
1593년(선조 26) 진주싸움에서 전사한 경상우병사 최경회(崔慶會) 혹은 충청병사 황진(黃進)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1593년 6월 김천일(金千鎰)·최경회·황진·고종후(高從厚) 등 관군과 의병의 결사적인 항전에도 불구하고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등이 이끄는 일본군에게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일본군이 진주성을 유린하고 수많은 양민을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른 것에 의분한 논개는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벌인 주연에 기녀로서 참석하여 술에 만취한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毛谷村文助]를 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었다.
논개 생가 마을은 약 30여호가 되는 것 같은데 초가집을 돌기와로 개조하여 민속 마을로 모두 복원해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농가 체험 마을로 이곳에서 영화촬영과 1박 2일도 촬영 했다는 안내도 있으며 팬션과 찻집도 있다
이곳은 깊은 산골로 논밭이 거의 없으며 마을 양쪽으로 고산高山 이라서 해가 일찍 떨어지는 곳이였다
마을은 보편적으로 깔끔하게 잘 정돈이 되어 있어서 볼것이 많아 관광객들이 좀 있었다
아래 건물이 내가 묵었던 마을회관이다
이곳 논개 생가 마을은 장수산과 백운산에 등산을 다녀온 단체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코스이다
아침에 일어나 마을을 돌아다녀 보니 아침밥을 하느라 집집마다 연기가 뽀얗게 오르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잠을 자고 저녁과 아침은 부녀회에서 해 주는 토종삽겹살과 맛깔나는 농촌 음식을 먹었다
마을회관에는 티브이 노래방 시설도 있으며 숙식 손님이 없어서 그리 많지 않다고 전한다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장안산에 올라가는 길목인 무릉고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였다
산행은 해발 500 미터 고지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정상 1236m 까지는 2시간이 채 안 걸린다
장안산은 가을 억새 추천 산행지로서 한시간 정도 오르면 억새 천국을 만날 수가 있다
무엇 보다도 오지에 있는 산행지라서 산길이 한적하고 여휴롭다
여휴있게 산행을 마치고 4시쯤에 논개 생가 마을로 내려갔다 내일은 덕유산을 오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