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서/인연에대하여

부평역지하철에서

시인김남식 2006. 11. 27. 19:00

부평역 지하철에서  솔새김남식

 

언젠가 널 만나고 돌아 오는 길이었다

그날도 겨울비가 많이 내렸지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 가다가

네가 혹시 그 자리에 아직 그냥 서 있는 줄 알고

문득 돌아다 보니 넌 저만치 가고 있었다

"어서 가아" 라고 말 하려 했는데

부평역 지하철에서

못내 서운함을 감추지 못 하였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발길을 돌아섰고

나 혼자 이러는 게 아닌가하고 자책을 하다가

엉겹 결에 탄 지하철이 반대 방향 엉뚱한 곳으로

가는 줄도 모르고 난 눈을 지그시 감고

네 생각을 했었다

 

이건 인연이 아니라는 걸을 느꼈지만

그래도 널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누구나 자신에 의지대로 안 되는 게 있다면

아마 그것은 사랑하는 일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에 원치 않은 곳에서 내려야 했다

 

그리고 밤늦은 저녁 집으로 가는 길목

빈자리가 없도록 사람들로 가득한

어느 낯선 목로주점에 들렸다

그곳에서 막걸리 한 두 잔이 들어가니까

자신도 나고 막 용기가 생기더라.

그래서 씩씩하게 달려가기로 하였다

 

좋아한다 말 하면 넌 저 만큼에서

떨어져 경계 하겠지만

사랑이 어디 그리 쉽게만 오던가

어느덧 취기가 돌아서 주점을 막 나 오는데

함박눈이 내리더구나

옷깃에 떨어져 금새 녹아내린 눈처럼

우리 마음은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내일 아침은 온 세상이

겨울 속으로 하얗게 채색되어 있겠지

눈이 내리는 밤

!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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